기묘한 야경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만큼의 교통량이면 엔진 소리에 경적, 사람의 고함까지 뒤섞여 강 건너까지 소음이 뻗쳐 들었었다. 환경규제로 전기차만 다니면서 엔진 소리부터 사라졌다. 이제는 운전석도 없는 캡슐 같은 차가 택시랍시고 돌아다니니, 화려한 야경이 무성-컬러 영화처럼 낯선-익숙함의 비대칭을 이룬다.
민성은 그 비대칭을 현재와 과거의 일에서 느꼈다. 그는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 야경에 속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취객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실어 나르며 하품 섞인 잡담을 했었다. 피곤했고 힘들었지만, 손님이 타고 내릴 때마다 사람의 소리가, 인간의 소음이 났었다.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소리는 갑자기 사라졌다. 가방끈이 긴 누군가는 언론에서 민성과 같은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학자
자동차가 처음 나와서 마부를 없앴을 때, 마부는 운전사가 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자율주행 인공지능이 택시 기사를 없앤 지금, 택시 기사가 인공지능이 될 수는 없죠.
확실히 새로운 택시의 조향장치에는 인간이 손댈 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민성과 같은 딱한 처지도 다루었지만, 그보다는 곧 급격하게 줄어든 교통사고와 차 안에서 음주를 즐기는 새로운 ‘알드 문화’를 다루었다. ‘알콜 드라이브’의 줄임말인 알드는 퇴근길 직장인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하고, 젊은 연인들에겐 이색 데이트로 인기였다. 문화의 무서움은 사회 저변에 깔려서 당연시되어 버리는 것이다.
민성은 그런 문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손끝이 시렸다. 그는 택배회사에 취업해서 라스트 마일* 업무를 맡았다. 택배도 물류 센터 간 이동인 미들 마일까지는 자율주행이 해결해 버렸다. 그 강력한 화물연대도 인공지능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민성은 일을 하면서도 3년은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민성은 그런 문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손끝이 시렸다. 그는 택배회사에 취업해서 라스트 마일* 업무를 맡았다. 택배도 물류 센터 간 이동인 미들 마일까지는 자율주행이 해결해 버렸다. 그 강력한 화물연대도 인공지능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민성은 일을 하면서도 3년은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라스트마일: 물류 및 유통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단계로 노동 집약적인 특성으로 개선이 어렵다. 특히 한국은 아파트나 골목이 많고 마당이 넓지 않고, 항공법 등에 따라 드론이 수행하기도 어렵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택시를 몰던 광진교를 걸어 건넜다. 보행로 앞의 한 구간이 평소와 달리 붐볐다.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성은 무슨 소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했다.
곧 민성에게도 보였다. 가드레일을 넘어 통행로를 역방향으로 휘청이며 달리는 사람이. 검은 옷으로 꽁꽁 싸맨 사람의 행동은 예측이 어려웠다. 보행로에 있던 사람이 위험하다는 식의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곧 민성에게도 보였다. 가드레일을 넘어 통행로를 역방향으로 휘청이며 달리는 사람이. 검은 옷으로 꽁꽁 싸맨 사람의 행동은 예측이 어려웠다. 보행로에 있던 사람이 위험하다는 식의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사고의 순간은 찰나였지만 복잡했다. 민성은 놀라서 멈추어 섰지만, 그 복잡한 상황을 전부 지켜봤다. 역방향으로 지그재그로 달리며 차로 거의 중앙까지 나와 있던 검은 옷의 사람,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다가 사람을 피하려고 중앙선을 넘어서는 승용차, 그리고 마주 오던 캡슐 택시의 놀라운 반응 속도.
캡슐 택시는 중앙선을 빠르게 넘어온 승용차를 피해 역으로 중앙선 침범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한 일로 이어졌다.
캡슐 택시는 중앙선을 빠르게 넘어온 승용차를 피해 역으로 중앙선 침범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한 일로 이어졌다.

민성
안돼!!!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른 것은 민성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은 모두 비명이나 탄식을 뱉었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차량 간 충돌을 회피한 캡슐 택시는 검은 옷의 사람을 뒤에서 쳐버렸다. 민성은 보았다. 캡슐은 늦었지만, 두 번째 장애물을 분명히 인식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전조등의 깜빡임과 경적 울림, 그리고 조향과 감속에서 나타나는 타이어의 미끄러짐이 동시에 나타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콰아앙!”
남자는 비틀거리며 달리던 방향으로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갔다. 뜬 몸이 가드레일을 비스듬하게 쓸고 부메랑처럼 다시 도로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을 본 민성은 한 손을 뻗은 상태로 굳어버렸다.
충돌을 감지한 택시는 즉각 사이렌을 울렸다. 동시에 촬영 드론에 통신도 했을 것이다. 민성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택시에서는 타고 있던 승객이 온몸을 떨며 내렸다. 드론이 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검은 옷의 사람을 어찌하지 못했다. 뒤이어온 경찰이 수습을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망한 사람이 중년의 남자라는 것 외엔 없었다.
민성은 경찰의 요청에 따라 목격자 진술에 응했다. 세세한 부분은 달랐지만, 목격자들의 진술은 대동소이했다.
“콰아앙!”
남자는 비틀거리며 달리던 방향으로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갔다. 뜬 몸이 가드레일을 비스듬하게 쓸고 부메랑처럼 다시 도로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을 본 민성은 한 손을 뻗은 상태로 굳어버렸다.
충돌을 감지한 택시는 즉각 사이렌을 울렸다. 동시에 촬영 드론에 통신도 했을 것이다. 민성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택시에서는 타고 있던 승객이 온몸을 떨며 내렸다. 드론이 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검은 옷의 사람을 어찌하지 못했다. 뒤이어온 경찰이 수습을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망한 사람이 중년의 남자라는 것 외엔 없었다.
민성은 경찰의 요청에 따라 목격자 진술에 응했다. 세세한 부분은 달랐지만, 목격자들의 진술은 대동소이했다.

헤드라인
| AI 택시, 보행자 치어 사망, 승객은 경상! 책임 소재 불분명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곧 신문과 인터넷을 점령했다. 사고 후 불과 1시간이 되지 않아서 퍼진 뉴스였다. 이후에 업데이트된 소식은 한동안 확대 재생산되는 뉴스 속에 묻혀버렸다. 죽은 남성이 전직 택시 운전사였던 점,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비정상적인 보행에 대한 언급보다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한 인간 운전자에 대한 악의적 뉴스, 죽은 K 씨를 갑자기 덮친 AI 택시에 대한 원색적 비판이 이미 SNS에 퍼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 현장을 목격한 민성조차 진실을 알기 어려운 뉴스가 다시 세상을 달구었다.

헤드라인
| AI 택시에 치여 숨진, K 씨의 유가족 - 택시회사와 AI 운전사 상대로 고소 결정
유가족의 변호사가 자신의 유튜브와 언론을 통해 사건을 키우면서 기사가 사실임이 드러났다. 민성은 배송 일을 보면서 귀로는 유튜브를 들었다. 이미 이 ‘AI 고소극’은 변호사의 의도대로 수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사건이 되었다.
원고측 변호사
자율주행 시스템이 탑승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었고, 실제로 그 알고리즘이 보행자를 희생한 것입니다. 이는 차량끼리의 사고로 사망자 없이 끝날 수 있었던 사건입니다. AI 알고리즘에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저의 의뢰인, 유가족은 택시회사만이 아니라, 운전한 AI를 고소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변호사가 스타가 되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AI에 대한 고소를 지지하는 여론에도 열기가 끓어올랐다. ‘AI가 운전도 하는데,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AI 활용 회사를 불매운동 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소스코드를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 등등의 목소리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는 다른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알고리즘이 자동 재생한 다음 영상에서, 한 사회학자가 민성도 느끼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유튜버
저는 개인적으로 결사반대입니다. AI를 법정에 세운다고요? 여러분! 그 뒤의 일이 상상 되십니까? 아니, 그전에 우리가 법정에 세우는 AI가 사고를 낸 AI와 같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여러분, AI가 정말로 자가 변론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지금 AI에게 무엇을 시키려는 거죠? 신성한 법정에서 변론하라는 요구가 과연, AI에 대한 우리의 분노 외에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이죠? 유가족의 슬픔은 저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AI에 대한 고소는 지금 우리가 분노를 표출해야 할 대상을 잘 못 고르고 있는 겁니다. 이 사건을 한참 벗어난 것이고, 그건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겁니다.
어제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대교를 걸으며, 민성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폐선된 철도의 선로를 바라보듯 그는 다시 침묵을 찾은 도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캡슐 택시는 드문드문 돌아다녔고, 사고가 있었던 곳을 순례 온 유튜버들이 카메라를 앞세우고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AI 택시가 민사소송에서 피고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법리적으로 AI를 법적 인격체로 볼 수는 없으나, 이번 사건에서 AI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판단의 주체로서 의사결정의 적법성과 책임 여부를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특수한 목적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며 피고로 인정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민성은 일하면서 들었던 한 유튜버의 결사반대 의견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도 전에 세상이 다시 멀미 나는 속도로 움직여 버린 걸 깨달았다. 민성은 피로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평생을 열심히 살았지만, 이룬 것은커녕 일자리마저 AI에게 빼앗긴 자신이 한심했다. 뭐라도 답답함을 벗어던질 출구가 필요했다.
그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민성은 그 뜨거운 민사소송의 방청권에 당첨되었다. 형사소송의 경우, 담당 검사는 AI가 법적 주체가 아니라고 판단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였다. 택시회사와 자율주행 AI개발사만, 피고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법학자들은 언론에 출현해 이번 민사재판은 단순히 AI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형사적 책임까지도 물을 수 있는 법적 인격체로 AI를 볼 것인지에 대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판이 열리는 변론 기일에 민성은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법원 앞은 붐비고 있었다. AI에 대한 역사적 첫 재판이 시작될 것이기에 언론이며, 유튜버며, 민성과 같은 시민이 여럿 모여 있었다. ‘AI 규탄’이라는 팻말을 든 익숙한 분위기의 무리도 보였다. 과거 민성처럼 회사에서 택시를 몰던 사람들이었다. 기사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하던, 후배도 있었다.
AI 택시가 민사소송에서 피고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법리적으로 AI를 법적 인격체로 볼 수는 없으나, 이번 사건에서 AI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판단의 주체로서 의사결정의 적법성과 책임 여부를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특수한 목적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며 피고로 인정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민성은 일하면서 들었던 한 유튜버의 결사반대 의견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도 전에 세상이 다시 멀미 나는 속도로 움직여 버린 걸 깨달았다. 민성은 피로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평생을 열심히 살았지만, 이룬 것은커녕 일자리마저 AI에게 빼앗긴 자신이 한심했다. 뭐라도 답답함을 벗어던질 출구가 필요했다.
그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민성은 그 뜨거운 민사소송의 방청권에 당첨되었다. 형사소송의 경우, 담당 검사는 AI가 법적 주체가 아니라고 판단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였다. 택시회사와 자율주행 AI개발사만, 피고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법학자들은 언론에 출현해 이번 민사재판은 단순히 AI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형사적 책임까지도 물을 수 있는 법적 인격체로 AI를 볼 것인지에 대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판이 열리는 변론 기일에 민성은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법원 앞은 붐비고 있었다. AI에 대한 역사적 첫 재판이 시작될 것이기에 언론이며, 유튜버며, 민성과 같은 시민이 여럿 모여 있었다. ‘AI 규탄’이라는 팻말을 든 익숙한 분위기의 무리도 보였다. 과거 민성처럼 회사에서 택시를 몰던 사람들이었다. 기사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하던, 후배도 있었다.

후배 기사
기계 주제에 법정까지 더럽히네요. 이게 말이 돼요?
민성
그러게 말이다.

민성은 무심코 대꾸했지만, 복잡한 심경은 집을 나설 때 그대로였다. 그는 방청권에 당첨됐다고 말하고, 과거 동료들을 뒤로하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평생 살면서 법원에 올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민성이었지만, 피고석 주변에 설치된 모니터와 키보드를 보면서 보통의 재판 형태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모니터 옆자리에는 개발사와 택시회사의 변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